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자폐증은 가슴 아픈 질병이다.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아동기 증후군으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 상태의 발달장애’, 질병관리본부 국가건강정보포털(http://health.cdc.go.kr/health/Main.do)은 자폐증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아 1000명당 1명 정도가 가지고 있고, 대부분 생후 36개월 이전에 증세가 나타나며, 여아보다 남아에서 훨씬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폐 장애를 완벽하게 고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조기에 발견해 증세를 줄이거나 언어 습득과 의사소통 증진을 통한 자립 능력을 키우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 없이 아기의 자폐 증세를 부모가 일찍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아기의 울음소리가 젖을 달라고 하는지, 아파서 내는 소리인지 조차 알아채기 힘든 초보 부모에게는 더욱 그렇다.

미국 UCLA의 교수이자 컴퓨터신경심리학자인 아리아나 앤더슨(Ariana Anderson)은 셋째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아기가 내는 울음소리가 무엇을 말하는 지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아기 울음소리를 알고리즘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그녀는 1700명이 넘는 아기들의 울음 소리를 연구했고, ‘채터베이비(Chatterbaby)’라는 앱(App)을 개발했다.

출처 : 채터베이비 홈페이지 캡처

영어와 스페인어로 서비스되는 이 앱은 스마트폰에서 다운 받을 수 있으며, 이용자들이 자신의 아기가 내는 울음 소리를 입력하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수많은 아기들의 울음 소리와 비교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아기 울음 번역기인 셈이다. ‘채터베이비’는 AI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아 아기가 아픈 지, 배고픈 지, 짜증을 내고 있는지를 90%의 정확성으로 알아맞힌다고 한다. 그런데 ‘채터베이비’를 단순히 아기 울음소리 분석에 그치지 않고 자폐증 진단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아리아나 앤더슨은 IT 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유색 인종 국가의 아이들은 부유한 선진국에 비해 자폐증 진단 시기가 1,2년 정도 늦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이런 불균형과 격차를 줄이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조기에 쉽게 자폐증을 진단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채터베이비’ 앱을 이용하려면 연구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부모가 제공하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UCLA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이용자들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머리를 흔드는 등의 아기의 발달 상황에 대한 설문 조사에도 응해야 한다. 이 설문조사는 아이가 6살이 될 때까지 해마다 실시된다. 연구팀은 아기 울음소리 오디오 파일과 이런 설문조사 자료를 결합해 자폐증을 진단하는 기계학습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자폐증을 연구하는 브라운대학 ‘아동 위험연구 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Children at Risk)’의 심리학자 스테판 쉐인코프(Stephen Sheinkopf)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보여주는 피치와 에너지, 공명 같은 음향적 특성에는 강한 신경적 단서가 있으며,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시각화 하고 정량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자폐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다른 데이터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이질적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시키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은 전혀 다른 데이터를 묶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자폐증의 조기 진단, 차별 없는 진단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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