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이 학교 정규 과목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주판 알을 굴려 계산하는 주산은 요즘 아이들의 영어 학원처럼 너도나도 배우러 다녔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전자계산기가 나오면서 주산 과목은 사라졌고 그 흔하던 주판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주산 자격증 시험도 없어진 지 10년 가까이 된다. 계산기가 암산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그때도 있었다.

휴대 전화가 나오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머리를 쓰지 않으니 기억력이 감퇴되고 두뇌 활동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고 탓하는 경우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무엇이든 척척 알아서 해주는 디지털 기술과 기기의 과다 사용과 중독성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일상적 활용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진다.

디지털 기기가 몸의 일부분이 된 현실에서 이게 궁극적으로 악영향을 주는 지 아니면 지나친 우려인지 누구에게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복스 미디어(Vox Media)는 11명의 전문가들에게 ’디지털 기술의 지속적 사용이 우리의 두뇌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How is our constant use of digital technologies affecting our brain health?)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론은 없었다. 연관 관계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에 의한 멀티태스킹과 기억력의 부정적 관련성에 대한 근거는 아직 없으며, 인과관계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의 지속적인 이용에 따른 방향과 흐름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 :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신경과학자이자 건강정신센터(Center for Healthy Minds) 창립자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주의력 결핍이나 산만한 행동이 증가하는 것을 걱정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자발적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마치 방향 키를 잃어버린 망망대해의 선원처럼 우리의 계획과 의도가 아닌 디지털 자극에 의해 떠밀려 갈 수 있다.

인간은 그 어떤 종보다 자발적인 규제 능력이 뛰어나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1890년에 “자발적으로 계속해서 관심사를 되돌아보는 인간의 능력은 판단과 성격, 의지의 근원이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역량이 손상되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자극에 의해 조작되는 거대한 실험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스마트폰을 점검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명상 같은 마음의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퍼 버(Christopher Burr) : 인지과학 철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 인터넷 연구소(Oxford Internet Institute) 연구원

디지털 기술의 지속적인 이용은 우리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가속도계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정도를 추정할 수 있게 하고, 음성 패턴의 자동 분석은 우울증을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데이터가 이렇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더욱이 건강이나 웰빙 기술 개발 업체들에 의해 이게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불충분한 데이터나 잘못된 데이터는 개인의 수면 패턴이나 기분, 다이어트 식이요법을 엉뚱하게 바꿔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헬스케어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의사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른 직접 개입을 피하게 된다. 대신에 환자들의 셀프 진단과 판정을 존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이나 웰빙 기술 분야에서도 같은 형태가 나타나고 이것은 자칫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디지털 기기의 측정을 통해 이용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윤리적 문제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최소한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

Anthony Wagner(앤소니 와그너) : 스탠포드대학 심리학과 과장

뇌의 기억 활동은 언어 이해와 학업 성과, 그리고 우리가 신경 쓰는 여러 일들의 결과물과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과학은 우리가 더 많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과 뇌의 기억 용량 사이에 부정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변화를 가져오는 지 여부는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빠르고 어렵기 때문에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다. 인과관계가 있고, 인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학업 성적이나 성취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아직은 알지 못한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실험과 더불어 대규모 과학(big science)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결과에 신뢰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설계되고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폴 머피(Paul Murphy) : 켄터키대학의 분자 및 세포 생화학 분야의 알츠하이머 질병 연구원

신경퇴행성 질병이 진척되는 데는 수십년이 걸린다.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나 스마트 의료기기가 상용화 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공공의 건강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아주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다.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몇 십년 동안 모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기에 빠져 사는 아이들의 스크린 타임을 연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게 나쁘다고 추정할 수는 있지만 보다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어떤 종류의 노출이 안전한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르지 않았다.

개리 스몰(Gary Small) : 아이브레인(iBrain)의 저자이자 ULCA 신경과학 및 인간 행동 연구소의 기억 및 노화 연구센터(UCLA’s Memory and Aging Research Center at the Semel Institute for Neuroscience and Human Behavior) 책임자

태어나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뇌는 성장한다. 디지털 기술의 상시적 이용은 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게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기술로 인한 편의성과 편리함은 주의력 결핍을 가져오면서 기억력을 방해하고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물론 이를 입증할 체계적인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단지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연령에 따른 기억력 문제를 연구했더니 십대 후반 청소년의 15%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디지털 기기의 상시적 이용이 그 배경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다.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은 뇌를 훈련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디오 게임이나 앱을 활용하면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동시에 다중 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도 한다.

수잔 바움가트너(Susanne Baumgartner) : 암스테르담 대학 교수이자 아동, 청소년, 미디어 연구센터(Center for Research on Children, Adolescents, and the Media, University of Amsterdam) 연구원

대부분의 십대 청소년은 요즘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온갖 종류의 미디어 콘텐츠에 들어갈 수 있다. 서로 대화하면서 숙제를 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미디어를 동시에 이용하기도 하는 미디어 멀티태스킹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런 미디어 멀티태스킹에 빠져들수록 청소년은 수면 부족과 주의력 결핍, 저조한 학습 능력을 보인다. 그런데 이게 반드시 디지털 기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면 문제만을 놓고 볼 때 소셜 미디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 여부보다는 소셜 미디어 사용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청소년의 수면 문제가 소셜 미디어의 과다 사용 그 자체보다는 소셜 미디어 사용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청소년의 인지 능력 개발에 해를 끼친다고 선뜻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이 인지 능력을 키우는 것 같은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엘리자베스 잉글랜더(Elizabeth Englander) : 매사추세츠 공격성 감소 센터(Massachusetts Aggression Reduction Center) 창설자

10대 청소년은 소셜 미디어와 관련한 고민이 많다. 친구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활발히 활동할 때 자신은 그렇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끼지 못할 때도 고민이다. 소셜 미디어에 묻혀 살 때 그나마 불안에서 벗어난다. 소셜 미디어는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묶어 두는 강력한 보상 시스템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몸으로 부딪치는 인간 관계를 방해하는 직접적인 근거라는 관점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질적인 인간 관계를 맺는 기술을 생각해보자. 이런 기술은 서로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형성되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소셜 미디어가 이것을 대체하려고 할 때 충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목도하고 있다.

아담 가잴리(Adam Gazzaley) :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신경학 교수

정보 과다 노출과 신속한 반응,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한 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흐름은 스트레스와 고민을 동시에 가져온다. 하지만 디지털 집착의 가장 큰 문제는 자연과 직접적인 인간 관계, 몸을 써서 하는 신체 활동과 유리되는 삶을 가져온다는 데 있다. 또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기술은 우리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기술만이 아닌 기술과 인간의 조화와 협력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일이다.

에단 주커만(Ethan Zuckerman) : MIT 시민 미디어센터(Center for Civic Media at MIT) 책임자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에 관해 얘기할 때 일정한 패턴이 있다. 중독성을 언급하고 사회에 해악을끼진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들과 성적인 문제를 거론할 때 특히 그렇다. 그래서 기술은 걱정을 낳고 도덕적 분노를 자아낸다. 하지만 때로는 이게 과장돼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 문제를 지적하며 당장 중단할 것을 권고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런 주장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이미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다.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필수 불가결의 역할을 한다. 장점이 그만큼 많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니르 예알(Nir Eyal) : Hooked: How to Build Habit-Forming Products의 저자

기술은 대마초를 피우는 것과 같다.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의 90%는 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릇된 습관에서 비롯된다. 해악을 없애는 것이 해결책인데,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이 파생시키는 문제를 찾아서 없애야 한다.

기술 회사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중독성이 있기 마련이다. 희망적인 것은 이용자들이 얼마나 여기에 매달려 사는 지를 제품이나 기기를 만든 업체는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사용자들의 로그 기록을 보고 일주일에 30시간인지, 40시간인 이용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이런 기록은 중독 성향 여부를 알려줄 수 있고,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도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기술 플랫폼은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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